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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치료 어떻게 할 것인가.

암환자의 자기 고민 1탄

암환자가 되다.
나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다.
자잘한 질병이 있었고 웬만하면 병원이나 약에 의심을 품진 않았고,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받는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물론 모든 혹은 제거해야 하는 것이고 의사의 말은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이라 생각했다.
의사의 권고대로 20년 7월 폐 앞쪽에 자리한 종격동 (양성)종양 제거수술을 받았고, 혹 하나 떼어내고 부교감신경이 손상 되어
왼쪽 상반신에서는 땀이 나지 않는 후휴증이 생겼지만, 예고 했으니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땀이 안 나는 것이 당장에 어떤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니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체온조절이 조금 힘들어졌다. 하지만 몸의 어떤 부분이 손상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종양이 생기다.
몸 안에 이상 조직이 생겼다는 것은 몸속에 노폐물과 독소가 쌓였다는 것이다.
독이 되는 음식을 먹고, 독이 빠져나갈 시간을 주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방치해서 생긴 결과다. 아주 오랫 시간동안.
내가 뭘 잘못해서 신이 나에게 이런 형벌을 내렸을까. 나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불행을 견뎌야 하나. 원망하던 시간도 있었다.
내 잘못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군가에겐 과로가, 누군가에겐 유해한 환경이 암의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식생활이 가장 큰 원인 같다. 그것이 원인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해서 신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명확한 일이기때문이다.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으라는 신호.

병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병원은 근본적으로 치유와 건강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의 증상을 약화시키는 것이 주목적인 곳이다.
약물도 죽지 않게 막을지는 몰라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병원이 죽지 않게는 해 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병원치료를 전면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항암치료 후 수술과 방사선 호르몬 치료의 진행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술로 절제한 임파선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으며, 나의 오르팔은 영구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일정정도의 장애를 갖게 될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병원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까지의 나도 병원이 아니라 자연치유를 선택하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자연치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비용또한 만만치 않았다. 여덟살 여섯살 아이가 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다.
병원이 시키는대로 과정을 진행하면 내가 뭔가를 바꾸거나 진행하지 않아도 완치되고 낫게 되고 건강해질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이 주로 하는 것은 이 죽을 것 같은 전혀 행복하지 않는 고통과 통증과 무기력과 근육통과 머리카락 손톱빠짐과 불임을 인내하지 않으면 유방암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주는 것이었다.
많은 암환자들은 그렇게 1년~2년을 항암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제거되었다 판정을 의사가 해 주면 비로소 안심하고 살던대로 살아간다.
암은 없애야 할 미친 세포이므로 완전히 제거 해야한다는 것이 정설이며, 제거된 미친세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서 제거해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 치료의 결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병원은 언제나 환자의 건강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이 환자를 죽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믿음은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신앙의 영역이 되었다.
보통사람들은 병원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거나 그러다 다시 암이 커지거나 죽은 경우를 더욱 더 과장해 회자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치유에 성공한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라는 말로....

언제 죽더라도 자유롭고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어떻게 살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야말로 주체적인 일이 어디 있겠나. 병원과 약이 아니라 자가치유를 선택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가족들이다.
선택의 담보가 삶이기 때문이다. 삶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 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고미중이다.